ONE- 약자를 위한 정의인가 (폭력의 전이, 도피처이자 억압의 상징, 힘의 역설)

 

정교 1등, 의대 지망생, 완벽한 아들. 김희겸을 수식하던 이 단어들은 연성고로 전학 온 뒤 '연성고 대가리'라는 거친 호칭으로 바뀝니다. 드라마 **《ONE 하이스쿨 슈퍼히어로즈》**는 폭력이 어떻게 개인을 구원하고, 동시에 파멸시키는지를 냉정하게 해부합니다.

[1. 폭력의 전이: 증오하던 아버지를 닮아가는 과정]

김희겸은 서문고에서 정교 1등을 놓치지 않던 모범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김석태의 강압적 교육 아래 평생 억눌린 삶을 살아왔고, 이미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연성고로 전학 온 뒤 최홍일에게 형이 남긴 워크맨과 헤드폰을 빼앗기자, 의겸은 처음으로 폭력을 행사합니다. "내가 중요한 물건이라고 했잖아"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항변이 아니라, 억눌렸던 자아의 첫 번째 균열이었습니다.

싸움 후 의겸은 스트레스가 해소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1학년 김승준, 2학년 남승식과 거성욱, 그리고 3학년까지 차례로 제압하며 그는 주먹으로 연성고를 재패합니다. 하지만 강윤기의 말처럼 "싸움이 한 번 해본 놈은 계속해. 습관이 되는 거지"라는 진리는 의겸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는 이유를 만들어 싸우기 시작했고, 폭력은 점차 목적이 아닌 수단 그 자체가 되어갔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의겸이 싸움을 통해 얻은 것이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구속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싸웠지만, 결국 싸움 때문에 공부를 놓쳤습니다. 학원에서 "너는 상급반에서 왔는데 어떻게 중급반에서 탑을 못 먹냐"는 말을 듣는 순간, 그가 원했던 평온은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최기수는 의겸에게 "너 집에서 막힌 거지?"라고 묻습니다. 이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질문입니다. 의겸의 폭력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문제 해결 방식이었고, 그는 자신이 증오하던 사람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윤기가 의겸을 이용해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 역시 폭력의 순환을 보여줍니다. "우린 나쁜 놈만 때린다"는 명분은 쉽게 도덕적 우월감으로 변질됩니다. 하지만 김남협을 때리고, 최기수 패거리를 응징하는 과정에서 윤기와 의겸은 점차 그들이 처벌하려던 양아치들과 구별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우리가 그놈들이랑 같으면 되겠냐?"는 의겸의 질문에 윤기는 "다르지. 나쁜 놈 때리는 거니까"라고 답하지만, 이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합니다. 폭력은 정당화될수록 더욱 깊은 중독을 낳습니다.

  • 복제된 해결 방식: 희겸은 아버지가 자신을 통제하듯, 주먹으로 학교를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자신이 당해온 폭력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학습하여 외부로 투사하는 '공격자와의 동일시' 현상을 보여줍니다.

  • 해방과 중독의 경계: 처음에는 뺏긴 워크맨을 찾기 위한 저항이었지만, 점차 싸움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도구'가 됩니다. "공부하기 위해 싸운다"는 그의 논리는 결국 폭력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가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했습니다.

  • [2. 소리 없는 헤드폰: 도피처이자 억압의 상징]

    이 작품에서 가장 상징적인 오브제는 형이 남긴 워크맨과 헤드폰입니다. 소리가 나지 않는 헤드폰을 쓰고 있던 형은 "헤드폰을 쓰면 아빠가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이자, 감정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구조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은 결국 그 저항을 이어가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할아버지는 "오로지 의사"를 원했고, 아버지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죄책감을 아들에게 전가했습니다. "너는 절대로 아빠처럼 무시받으면서 살면 안 돼"라는 아버지의 말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식을 통해 해소하려는 왜곡된 욕망입니다. 형은 의대에 합격했지만 그것으로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큰 압박 속에서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첫째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공황장애를 겪으며 약을 복용하게 됩니다.

    의겸 역시 같은 구조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나 너무 힘들어요"라고 호소하지만 아버지는 "왜 이제 시작인데"라고 답합니다. 강압적 교육은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자식을 도구화하는 폭력입니다. 의겸이 형의 워크맨을 받아들고 "이걸 쓰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져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 역시 형과 같은 길을 걷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엄마가 치료를 이유로 정신병원에 보내지는 장면입니다. "진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아빠예요"라는 의겸의 외침은 이 작품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가족을 병들게 한 것은 엄마의 공황장애가 아니라 아버지의 강박과 폭력적 통제였습니다. 하지만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아버지는 문제로 지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자인 엄마와 아들이 "치료 대상"으로 낙인찍힙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교육 폭력과 가족 내 권력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대목입니다.

  • 현실 차단: 형은 헤드폰을 쓰면 "아버지가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가부장적 권위가 미치지 않는 유일한 정신적 성역(Sanctuary)을 의미합니다.

  • 침묵의 저항: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 단절을 뜻함과 동시에, 아무리 소리쳐도 들어주지 않는 부모 세대에 대한 무언의 항의입니다. 희겸이 이 헤드폰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형이 겪었던 비극적인 굴레를 고스란히 계승했음을 암시합니다.

  • [3. 힘의 역설: 지배할수록 좁아지는 자유]

    최기수는 의겸에게 묻습니다. "힘에는 두 가지가 있어. 일시적인 힘과 지속 가능한 힘. 너는 지속 가능한 힘을 가져야 돼." 이 대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힘은 자유를 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굴레인가?

    김남협은 휠체어를 위한 시설 개선을 주장하며 모범생의 가면을 쓰지만, 실제로는 오승범을 불구로 만든 폭력의 가해자입니다. 그는 병원 관계자들 앞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어플을 만든 사람이 누군가를 불구로 만들었다는 게 끔찍합니다"라고 말하며 위선을 떱니다. 이는 힘을 가진 자가 어떻게 이중적인 얼굴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반면 의겸과 윤기가 만든 "하이스쿨 슈퍼 히어로즈"는 명분상 약자를 돕는 조직이지만, 실제로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권력 구조입니다. 최정원을 괴롭히던 아이들을 응징하며 "너를 때린 놈들을 아주 똑같이 때려주는 거야"라고 말하는 윤기의 논리는, 결국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입니다. "폭력은 행사한 그 크기만큼 다시 돌아오는 거야"라는 윤기의 고백은, 그 스스로도 자신이 만든 구조의 희생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입니다.

    이걸째의 등장은 이 질문을 더욱 첨예하게 만듭니다. 무명고에서 싸움으로 1등을 하고 전학 온 이걸째는 "싸우기 싫다"고 말하지만, 결국 의겸을 구하며 폭력의 고리에 다시 뛰어듭니다. 무명고는 법무부 산하 시범학교로, 소년원에 갈 학생들을 모아 싸움 순위로 서열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힘은 자유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됩니다. 이걸째가 "학교를 잡으시려면 김희겸을 찾았어야죠"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이미 폭력의 생태계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임을 드러냅니다.

    작품은 결국 "힘 있으면 자유로울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다"는 최기수의 말이 환상임을 증명합니다. 의겸은 연성고를 주먹으로 재패했지만 공부를 놓쳤고, 윤기는 복수를 완성했지만 친구 지성을 혼수상태로 만든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남승식은 복싱 유단자로 1학년을 잡고 있었지만 결국 의겸에게 무릎을 꿇었고, 김남협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지만 내면의 폭력성을 감출 수 없습니다. 힘은 일시적인 우위를 줄 뿐, 지속 가능한 자유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인물힘의 형태결과
    김석태 (아버지)가부장적 권위와 통제가족의 붕괴와 아들의 폭주
    김남협 (가해자)위선적인 사회적 지위내면의 악마성을 감춘 이중 생활
    강윤기 (복수자)'정의'로 포장된 폭력친구를 잃은 죄책감과 악순환
    김희겸 (주인공)압도적인 물리적 타격력학업 중단과 또 다른 폭력의 장(무명고) 입성

    마치며: 진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드라마는 공황장애를 겪는 엄마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장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꼬집습니다. **"진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아빠예요!"**라는 희겸의 외침은, 가해자는 건재하고 피해자들만 '환자'로 낙인찍히는 비정상적인 구조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입니다.

    마지막 순간, 희겸이 무명고로 전학 가는 결말은 개인의 해방이 구조의 변화 없이는 완성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현실의 투영입니다. 2026년 오늘, 우리 아이들이 헤드폰 속에 숨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어른들의 '왜곡된 욕망'이 아닐까요?

    ---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TWC8KQiQhxI